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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논단] 호르무즈 포화 속 한국의 기후·에너지 전략
송고일 : 2026-03-23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에너지신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포성이 중동의 하늘을 뒤덮을 때마다 한국 경제의 심박수도 함께 올라간다.
처음에는 독재와 핵, 보복의 언어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갈수록 에너지 전쟁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가스전과 정유시설, 해상 수송로가 군사기지만큼이나 핵심 표적으로 떠오르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한국 경제의 에너지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처절하게 확인하고 있다.
전쟁의 본질은 표적이 말해준다. 이번 충돌에서 정밀 타격의 대상이 된 것은 군사시설만이 아니었다. 가스전과 수출 거점, 정유 및 발전 인프라가 함께 흔들렸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 커질 때마다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은 치솟고, 그 여파는 곧바로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로 번진다.
휘발유 가격이 뛰고 전력비용이 흔들리며 제조업 원가가 상승해 물가와 무역수지를 동시에 압박한다. 중동의 지정학적 충격이 곧 한국의 산업위기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번 전쟁은 한국 에너지 정책의 불편한 진실도 드러냈다. 평소에는 탄소중립을 말하지만 정작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석탄과 원전부터 꺼내 든다.
특정 전원에 대한 선호를 떠나, 우리의 에너지 조달 체계가 외국의 화석연료 수송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화석연료 체제의 문제는 탄소배출에만 있지 않다. 전쟁과 해상 봉쇄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인질이 된다는 데 더 큰 취약성이 있다.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냉혹한 교훈을 읽어야 한다. 기후전략은 더 이상 환경 캠페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가의 생존과 산업의 지속성을 좌우하는 안보 전략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단지 탄소감축 수단으로만 보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유조선 호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분산형 전원 체계는 먼 타국의 가스전이 폭격당했다고 해서 곧바로 멈춰 서지 않는다. 물론 재생에너지만으로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와 저장장치 확충, 전력망 투자, 산업의 전기화, 수요관리 체계의 고도화가 함께 추진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외부 충격으로부터 국가경제를 지키는 안보 인프라가 된다.
우리는 지금의 충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유가 급등과 공급 불안을 그때그때 대응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아예 중동 해협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에너지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자유항행을 지키기 위한 국제 공조와 비축, 수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저장하며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체계로 바꾸는 일이다. 그래야 전쟁이 날 때마다 석탄 의존을 되살리고 가격 통제에 기대는 후진적 비상대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정 분쟁 당사국이 제시하는 새로운 육로 루트에 기대를 거는 것도 보완책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로든 육로든 외부 통로에만 운명을 맡기는 한 우리는 또 다른 인질이 될 뿐이다. 진정한 해법은 외부경로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경로 자체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데 있다. 그것이 곧 재생에너지 확대이고, 에너지 자립의 강화이며, 산업 경쟁력의 재설계다.
진정한 기후 대응과 탈탄소 전환은 탄소 숫자를 맞추는 형식적 관리로 완성되지 않는다. 외부의 지정학적 충격으로부터 경제 시스템을 지켜내는 리스크 관리 능력, 에너지 통로를 다변화하고 국산화하는 주권의 능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이며,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다.
중동의 불길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분명하다. 기후정책은 더 이상 한 부처의 과제가 아니다. 국방과 산업, 재정과 통상이 함께 풀어야 할 최우선 국가 전략이다.
이번 호르무즈의 위기를 두려움 속 임시 처방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한국형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를 함께 밀어붙이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후 전략이 곧 안보 전략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구체적 정책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