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뉴스
에너지·가스 업계 소식과 사고 사례
-
[2026년 에너지 전망⑩(끝)]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 지속과 대전환
송고일 : 2026-03-16
에너지 시장의 변화 이미지 /AI 생성
[투데이에너지 장재진 기자]
인류 역사상 에너지는 국가의 생존과 성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파도 속에 놓여 있다. 과거의 에너지 시장이 석유와 가스라는 화석연료 중심의 안정적 수급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지정학적 갈등, 기후 위기, 그리고 기술 혁신이라는 세 가지 동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시장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시장의 변동을 넘어, 글로벌 경제 지형과 안보 체제를 재편하는 '에너지 대전환'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편집자주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들
2026년은 에너지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는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들로 인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지정학적 리스크의 상시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의 자원 무기화가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탈피 노력은 글로벌 공급망의 단절을 가져왔고, 이는 에너지 가격의 급등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한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 역시 여전히 시장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 및 주요 군사 거점을 겨냥해 단행한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는 잠잠하던 중동 에너지 시장에 거대한 폭탄을 던졌다. 이 공습은 단순한 국지적 충돌을 넘어,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공습 직후 국제 유가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브렌트유 기준 10% 이상 폭등했으며, 천연가스 가격 또한 하루 만에 40% 이상 치솟는 등 시장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중동의 불길이 글로벌 ‘에너지 안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둘째, 기후 위기에 따른 탄소중립 압박이다.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는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 당위성에 직면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급의 간헐성(변동성) 문제는 에너지 안보에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탄소 국경세 도입 등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에너지 비용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셋째, 글로벌 공급망의 블록화다.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국가와 기술력을 가진 국가 간의 '자원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배터리나 태양광 패널 제작에 필요한 핵심 광물(리튬, 니켈, 희토류 등)의 확보가 새로운 에너지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동 지역 불안정성이 에너지 시장 시한폭탄으로 작용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나는 에너지 믹스의 다변화와 원자력의 재평가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력 수요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한때 외면받던 원자력 발전이 기저 부하(Base Load)로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탄소 배출이 없으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동시에 천연가스(LNG)는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를 잇는 가교(Bridge) 에너지로서 그 전략적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 하나는 수소 경제로의 이행 가속화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최종 병기로서 수소가 부상하고 있다. 특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수소를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철강, 화학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 현장에서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수소 공급망 구축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 효율화와 디지털화(Energy 4.0)다. 단순히 에너지를 얼마나 생산하느냐를 넘어,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그리드, 가상 발전소(VPP), 에너지 저장 장치(ESS) 기술은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하고 공급망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 격화는 한국 에너지 시장에 '단기적 실적 반등'과 '장기적 공급망 위기'라는 양면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200일 이상의 비축유를 바탕으로 비상 수급 대책을 가동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혈맥’이다. 현재 이 지역을 통과하던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 수송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선박 보험료 급등과 물류 경로 우회로 인한 추가 비용은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최대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는 1970년대 오일 쇼크에 준하는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낙관적 시나리오는 미국의 셰일 오일 증산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략비축유 방출(약 4억 배럴 승인)이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을 지지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26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유가 ‘배럴당 200달러’ 현실이 될 것인가? 주요 금융기관과 전문가들의 전망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도 ‘상당 기간 고유가’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향후 전망과 글로벌 경제의 향방
결국 향후 유가의 향방은 전쟁의 지속 기간과 이란의 보복 수위에 달려 있다. 분쟁이 수주 내에 종식되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에너지 소비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는 무역 수지 악화와 국내 물가 폭등이라는 이중고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저유가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된 ‘뉴 노멀(New Normal)’ 시대로 진입했다. 각국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전략적 재편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국내 정유 및 에너지 기업에 미치는 영향
KDI 경제교육·정보센터에 따르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S-OIL,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를 포함한 에너지 업계에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정유사들이 미리 사둔 원유의 가치가 오르는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석유제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정제마진이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단기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다.
유가 급등은 원유 수입 비용을 높여 정유사의 운영 자금 부담을 키운다. 장기적으로는 고유가로 인한 소비 위축과 항공·해운 등 전방 산업의 침체가 정유사의 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복합 위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민생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정유사의 '기름값 폭리'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현장 점검에 나섰고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시행으로 정유업계의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비상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전략비축유는 약 1억 9200만 배럴로, 추가 수입 없이도 약 208일(약 7개월) 동안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협조하여 약 2250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준비 중이며, 석유·가스 수급 비상대응반을 가동해 시장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유연하고 전략적인 대응의 필요성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한국에 이러한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에너지 수입 비용 상승은 무역 수지에 악영향을 주지만, 우리가 가진 원전 기술, 배터리 제조 능력, 수소 활용 기술 등은 글로벌 시장 재편 과정에서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에너지전문가들은 한국은 우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핵심 광물의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규제 중심의 환경 정책에서 벗어나 기술 혁신을 통해 탄소중립을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는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분산형 전원 시스템 구축을 통해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정책적 노력도 병행돼야한다고 분석한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시장의 재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제 에너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생존의 핵심 변수다. 과거의 관행에 안주하기보다 변화하는 흐름을 정확히 읽고, 기술적 우위를 점하며, 유연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국가만이 대전환의 시대에 승자로 남을 수 있다. 에너지 주권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범국가적 역량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