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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인프라의 역설, ‘더 짓기’보다 ‘잘 쓰기’에 집중하라
송고일 : 2026-03-19
전력 인프라의 역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전 세계적인 AI 산업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전력 산업의 패러다임이 신규 설비 증설 중심에서 기존 망의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총지출(TOTEX)’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단순한 설비 확충만으로는 막대한 비용 부담과 수요 대응 시차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력망 이용률 30~50% 수준… 구조적 비효율 드러나
현재 미국 전력망은 물리적 설비 부족보다 이미 구축된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비효율 문제를 안고 있다. 듀크대 등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전력망의 평균 이용률은 약 53% 수준이며, 특히 서부 지역은 30%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전력 부족 문제가 단순한 설비 부족이 아니라, 피크 시간대 수요 집중과 계통 병목, 그리고 수요 변동성에 대한 대응 한계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한 ‘Utilize’ 관련 움직임은 하나의 참고 사례로 주목된다. 해당 모델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한 시간대별 수요 이동, 지능형 수요 반응(DR), 계통 최적화 기술을 결합해 전력망의 잠재 수용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같은 효율화 전략이 데이터센터 등 신규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적용될 경우, 향후 대규모 송전망 투자 일부를 대체하며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비 투자(CAPEX)에서 총지출(TOTEX) 중심으로
이 같은 변화의 핵심에는 ‘TOTEX(Total Expenditure, 총지출)’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설비 투자 비용(CAPEX)과 운영 비용(OPEX)을 통합적으로 관리해 전체 시스템 비용을 최소화하는 접근 방식이다. 과거에는 설비를 얼마나 많이 구축했는지가 성과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기존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제도 변화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신규 전력 설비를 건설하기 전에 기존 자산을 활용한 대안이 충분히 검토됐는지를 우선 입증하도록 하는 정책이 도입되는 등, ‘증설 이전 효율화’ 원칙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국내 시사점: ‘계통 병목’ 해소 위한 한국형 VPP 모델 필요
이러한 변화는 송전망 포화로 신규 발전원 계통 연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전력 시장에도 시급한 과제를 던진다. 국내에서는 주민 수용성 문제로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동해안과 호남 지역의 전력이 수도권으로 원활히 전달되지 못하는 계통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제주와 호남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계통 접속 대기 물량이 수십 기가와트(GW) 규모에 달해 신규 사업이 정체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전력 설비의 절대량 부족이라기보다 계통 운영의 유연성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지적이다.
물론 효율화 솔루션만으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송전망 증설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가상발전소(VPP)와 지능형 수요관리 플랫폼 등 IT 기반의 망 효율화 시장 육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전력 기기 중심의 하드웨어 경쟁력을 넘어 전력망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역량 확보가 향후 에너지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용어 설명]
ㆍTOTEX (Total Expenditure, 총지출)= 설비 투자 비용(CAPEX)과 운영 비용(OPEX)을 통합적으로 고려해 전체 시스템 비용을 최적화하는 개념
ㆍUtilize (유틸라이즈)= 테슬라, 구글, 캐리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한 전력망 효율화 관련 협력 체계. ESS, 수요 반응, 계통 최적화 기술을 결합해 전력망 활용도를 높이는 모델
ㆍ수요 반응 (DR, Demand Response)= 전력 수요가 높을 때 소비자가 사용량을 줄이면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
ㆍVPP (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 분산된 에너지 자원을 소프트웨어로 통합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시스템
ㆍ출력 제한 (Curtailment)= 전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거나 계통 수용 한계를 넘을 경우 발전을 강제로 줄이는 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