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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마당] 전기는 열의 산물, 에너지 본질에 과감히 투자해야
송고일 : 2026-02-02
▲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소장.[에너지신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살면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철학적 질문이자,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관통하는 명제다. 최근 전 세계는 탄소중립과 AI 시대를 선포하며 ‘전기화(Electrification)’에 사활을 걸고 있다.
화석연료를 대신해 전기가 모든 산업의 혈관이 되는 시대, 우리는 달걀(전기)의 매끈한 껍데기와 그 쓰임새에만 매료된 나머지, 정작 그것을 낳은 닭(열에너지)이라는 본질적인 존재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기생산의 원리를 들여다보면 현대 문명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소박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전기는 크게 교류(AC)와 직류(DC)로 나뉘지만, 이 둘을 만드는 기술의 핵심 원리는 사실 한 단어로 요약된다. 바로 ‘회전 운동’이다.
교류(AC)는 거대한 자석 사이에서 코일을 회전시키면, 전자기 유도 법칙에 의해 전기가 만들어진다. 이때 자석의 극이 바뀜에 따라 전기가 나가는 방향과 힘이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인파’ 형태의 교류다.
반면 직류(DC)가 처음 만들어지는 원리는 교류와 같지만, 여기에 ‘정류자’라는 일종의 방향 전환 장치를 달아 전기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만든다.
마치 굽이치는 강물을 일직선 운하로 바꾸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교류든지 직류든지, 결국 무언가를 ‘돌려야’ 전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회전체를 돌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열에너지’가 만든 강력한 수증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열’을 잊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인류는 열에너지를 기반으로 전기를 생산해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열에너지에 기반한 전기 생산’이라는 문장에서 앞 절반을 생략한 채 ‘전기화’만을 외치기 시작했다.
고효율 전력망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해결을 위한 ESS(에너지저장시스템)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면서도, 전기의 ‘산실’인 열에너지 기술 혁신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방식(랭킨 사이클)에 의존해 왔다. 문제는 물이 가진 고유한 물리적 특성, 즉 ‘끓는점’과 ‘임계점’이라는 한계 때문에 발전 효율 향상이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물을 매개로 하는 한, 아무리 기술을 쥐어짜도 이론적인 효율의 벽을 넘기가 어려워졌다. 이것이 현재 에너지 공학계가 마주한 ‘유리 천장’이다.
에너지 자립이 곧 안보인 대한민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점진적인 개선이 아니라, 열에너지의 물리적 한계를 깨부수는 ‘혁명적 혁신’이다.
첫째, 초임계 이산화탄소 발전에 주목해야 한다. 물 대신 이산화탄소를 액체와 기체의 중간 성질을 가진 ‘초임계’ 상태로 만들어 터빈을 돌리는 기술이다. 이는 기존 수증기 터빈보다 장비 크기를 10분의 1로 줄이면서도 발전 효율은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둘째, 열저장(TES)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남는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하는 방식(ESS)은 고비용과 화재 위험이 따르지만, 에너지를 ‘열’의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로 바꾸는 방식은 훨씬 저렴하고 대용량 저장이 가능하다.
셋째, 산업 폐열의 재발견이다.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버려지는 열에너지만 잘 회수해도 국가 에너지 효율을 몇 단계는 끌어올릴 수 있다. '열 네트워킹'을 통해 버려지는 열을 인근 주거지의 난방이나 다시 전기를 만드는 동력으로 전환하는 기술은 탄소중립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고립국이다. 이런 환경에서 열에너지 기술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R&D를 넘어 국가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최근 각광받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핵심 경쟁력도 결국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을 얼마나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추출, 수소생산이나 발전에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재 혁신을 통해 더 높은 온도를 견디는 금속을 개발하고, 물을 대체할 새로운 열전달 매체를 찾아내는 연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고품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얻고 싶다면, 전기를 낳는 매개체인 ‘열에너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전선과 배터리라는 ‘현상’에만 매몰되지 말고, 열과 회전이라는 에너지의 ‘본질’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전기화’라는 구호 너머, 그 근간이 되는 ‘열에너지의 혁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